현대 사회는 이제 단순한 정보화 사회를 넘어 **감시사회(surveillance society)**로 진입했다. 감시사회란, 국가와 기업, 개인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타인의 일상, 위치, 소비, 건강, 심지어 감정 상태까지 추적하고 기록하는 체계를 말한다.
CCTV, 위치 추적, SNS 알고리즘, 얼굴 인식 기술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우리의 움직임과 생각을 끊임없이 ‘공개’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시민’의 위치: 권리의 주체인가, 감시의 대상인가?
**시민(citizen)**은 고대부터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누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감시사회에서는 시민의 정의가 위태로워진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국가나 기업에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맞춤형 광고나 서비스, 공공 편의를 받는다. 겉으로는 권리를 누리는 것 같지만, 사실상 우리는 지속적인 관찰과 평가를 받고 있다.
신용 점수, 건강 앱, 위치 정보, 심지어 온라인에서의 ‘좋아요’ 수까지—이 모든 것은 시민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 시민은 더 이상 단순한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화된 객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배제된 자의 초상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호모 사케르》라는 저서에서 고대 로마의 특수한 인물 유형을 조명했다.
호모 사케르란, 죽일 수는 있지만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즉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감시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발언 하나로 ‘취소(cancellation)’되는 사람들
신용카드 연체 한 번으로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공공장소에서 AI 카메라에 의해 ‘위험 인물’로 인식되는 이들
그들은 법적으로는 시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생명에서 퇴출된다. 그 순간, 그들은 감시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호모 사케르가 된다.
호모 사케르와 시민의 경계: 우리는 모두 경계 위에 있다
아감벤이 말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은 법적 권리와 인간다움을 모두 박탈당한 존재를 뜻한다. 감시사회에서 시민은 끊임없이 이 벌거벗은 생명의 상태와 접해 있다.
우리는 ‘좋은 시민’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감시와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민과 호모 사케르는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스펙트럼에 존재한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감시사회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 인간성, 배제의 문제이며,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를 이해하고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감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감시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가?
우리는 타인을 ‘시민’으로 인정하는가, 아니면 ‘관리 대상’으로 보는가?
우리는 누군가가 호모 사케르가 되는 것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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